원인불명 복통, 혹시 람블편모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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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불명 복통, 혹시 람블편모충?
한국건강관리협회
  • 입력 : 2020. 09.25(금) 10:26
  • 호남매일뉴스
[호남매일뉴스] 외모 덕에 위험성을 숨길 수 있었던 기생충이 있다면 믿을까. 인형 같은 몸체에 살랑이는 편모, 마치 눈처럼 보이는 두 개의 핵이 귀여움 포인트인 람블편모충. 그 기막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장에 염증을 유발하는 기생충
한 여성이 아랫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왔다. 검사 결과 경미한 방광염이 있어서 항생제 치료를 했지만 복통은 계속됐다. 의사는 원인을 찾기 위해 내시경을 했다.

위내시경에서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대장내시경에서 장점막이 붓고 불그스레한 부분이 관찰됐다.‘이게 뭐지?’ 의사는 그 부분을 떼어 병리과에 보냈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조직에서 람블편모충의 영양형이 다수 발견됐습니다.”‘람블편모충? 아, 이거 기생충학 시간에 배운 건데!’

기생충은 크게 연충과 원충으로 나뉜다. 길이 30cm의 회충처럼 눈에 보이는 기생충을 연충이라 하며, 말라리아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원충이라 한다. 연충이 크기에 비해 별다른 증상을 유발하지 않는 데 비해 원충은 사람 몸에서 숫자를 늘리며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흔하다.

람블편모충은 십이지장에 살며 설사와 복통을 일으킨다. 존재 자체가 장에 염증을 유발하는 탓이다. 게다가 람블편모충은 증식능력이 대단히 뛰어나 장벽을 몇 겹으로 포위해 버린다.

십이지장은 원래 쓸개즙이 분비되는 곳이며 쓸개즙의 역할은 바로 지방흡수다. 그런데 람블편모충의 인해전술로 인해 쓸개즙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니 우리가 먹은 지방이 몸 안으로 흡수되지 못한 채 변에 섞여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소위 말하는 지방변인데, 이는 람블편모충 감염의 특징적인 증상이다.

“이 귀여운 게 병을 일으킬 리 없어”

람블편모충의 해악이 알려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유는 놀랍게도 외모지상주의.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람블편모충은 원충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기생충이다.

1681년, 현미경을 처음 발명한 레벤후크(Anton van Leeuwenhoek)는 주변 여러 가지를 현미경에 놓고 관찰하는 등 선구자의 특수를 누린다. 그러던 중 그가 설사에 시달리는 일이 생겼다.

혹시 현미경을 이용해 설사의 원인을 알 수 있을까 싶었던 레벤후크는 변을 올려놓고 현미경에 눈을 갖다 댔다. “어? 저게 뭐지?” 레벤후크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귀엽게 생긴 뭔가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그게 바로 설사의 원인인 람블편모충이었지만, 레벤후크는 그 귀여운 모습에 넋을 잃었다. 기생충의 몸속 두 개의 핵이 흡사 눈처럼 보이는 데다, 편모를 움직이며 헤엄치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 레벤후크는 황당한 결론을 내린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설사와는 관계없어.”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1859년, 람블(Vilem Dusan Lambl)이란 이름을 가진 의사는 위장염을 앓던 다섯 살짜리 여자애의 변에서 이 기생충을 발견하고, 이게 위장염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 기생충의 이름이 람블편모충이 된 것도 이 때문인데, 또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람블편모충의 미모에 반한 다수의 학자들이 ‘이렇게 생긴 애가 그럴 리 없다’고 우겨댄 것이다. 인형으로 만들어져 팔릴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30년 가까이 계속된 논란은 어이없게 끝난다. 한 연구자가 자원자들을 모집해 람블편모충을 먹인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복통과 더불어 냄새나는 설사를 질펀하게 했고, 람블편모충은 결국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이 됐다.

◆외모로 판단하는 건 금물
람블편모충은 주로 물을 통해 감염된다. 그러다 보니 집단감염이 흔하다. 특히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곳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선진국들이 람블편모충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선 해마다 2만 명 정도가 람블편모충에 감염된다니, 다른 나라에 갈 때는 수돗물을 마시기보단 반드시 검증된 생수를 먹는 게 좋겠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말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에선 람블편모충 집단감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2010년 4월, 전북 진안군에서 같은 식수원을 사용하는 7명이 단체로 감염된 게 유일한 사례다. 그만큼 우리나라 정수시설이 우수하다는 얘기 같은데, 이쯤 되면 K-정수라는 말을 써도 될 듯하다.

기생충이 다 그렇듯, 람블편모충은 치료에 아주 잘 듣는다. 약국에서 파는 구충제 말고 메트로니다졸(metronidazole)이라는 약을 1주일가량 복용하면 금방 치료된다. 이 환자의 경우도 추후 시행한 대변검사에서 람블편모충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외모가 귀여운 기생충이라고 해서 다 착한 것은 아니다. 외모를 보고 기생충을 평가하기보다는 그 행동을 보고 평가하자. 물론 이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지만 말이다.

호남매일뉴스